업무를 할 때의 마인드 세팅에 관하여..
외국계 회사의 한국지사에서 FAE를 하고 있다. 기술 영업과 비슷한 직무다. 기술 개발의 동향을 파악하고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서 공장에 공유한다. 그리고 자주 고객사 엔지니어와 미팅을 갖는다. 고객사가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우리측 필요에 의해 고객사를 방문한다. 고객사 엔지니어들도 웬만한 안건이 아니면 잘 만나주지 않는다. 가장 만나기 쉬운 방법은 샘플 전달을 미끼로 만나는 것이다. 이런 대면 미팅 때 나온 얘기들 중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게 있으면 공장에 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불량 문제가 터졌을 때, 고객사 엔지니어와 공장 품질 담당자와 연결해주는 역할도 한다.
나는 FAE이지만 다루는 품목이 너무 많아 아직도 잘 모르는 아이템이 많다. 물론, 그나마 잘 안다고 하는 품목도 정말 깊게 파고들면 모르는 게 수두룩하다. 나도 공장 엔지니어에게 물어보고 답변을 받아보며 공부해야 한다. 근데 공장에서 피드백이 늦을 때가 정말 많다. 글로벌 회사이기 다른 나라에서도 엄청난 문의를 받는다는 건 이해한다. 그런데, 너무 늦을 때가 많다.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늦는다. 돈 잘 벌어다 주는 고객사의 문의가 아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내부 소통이 늦으면 외부 소통에도 문제가 생긴다. 고객사는 도대체 언제 답변을 줄 거냐고 묻고, 나는 그 때마다 늦은 업무 대응에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한다. 그냥 툭하면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왜냐면, 진짜 잘못한 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잘못해서 늦는 건 아닌데, 가끔 억울하다. 단순히 '아직 회신이 오지 않아 답변을 못 드립니다.'라고 말해버리면 회사 이미지를 깎아 먹을까봐 걱정이 된다. 향후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 '이 회사는 싸가지가 없어.'라며 고려하지 않으면 어떡하겠는가. 그래도 회사 직원이면 회사를 생각해야지.
한국에서는 통화도 하고 직접 만나서 얘기도 할 수 있다. 근데, 해외에 있는 사람들과는 당연히 메일로만 일을 해야 한다. 게다가 비즈니스 메일이기 때문에 특히 공손해야 한다. 이게 한국인이 특징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메일의 시작과 끝에 '좋은 하루 보내세요.', '미리 감사드립니다.' 등의 멘트를 항상 덧붙인다. 그래야지 양질의 답변과 빠른 답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데, 답변은 없고 나만 누차 메일 보내는 상황이 계속되면 나도 화가 난다. 그러다 보면 메일에 기분이 묻어 난다. 항상 따라 붙던 인사와 감사는 없어진다. 메일도 짧아지고 왜 답변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도 덧붙인다.
정말로 저런 식으로 메일을 보내면 그제서야 답변이 온다. 근데, 마음에 안 든다. 오래 기다려서 받은 것 치고 내용이 굉장히 부실하다. 기다린 보람이 없다. 받은 내용을 고객사에게 그대로 전달하면, '장난하세요?'라고 말할 수준이다. '내가 번역을 잘못했나?' 아니면 '요청사항을 빼먹은 게 있나?' 생각하며 메일을 다시 읽어본다. 읽어보면서 다시 번역기도 돌려보고, AI를 이용해 내 의도가 제대로 번역이 됐는지 확인도 한다. 물론, AI가 만능은 아니지만, 항상 AI는 내 의도대로 메일이 잘 번역되어 나갔다고 판단해줬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생각해 본다. 일을 하다가 보면 한국 사람들이 제일 빠릿빠릿하게 일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편견일 수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해외 사람들은 뭔가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다. 동양권은 그나마 덜한데, 서양권은 확실하다. 고객사를 상대함에도 '내가 낸데?' 마인드가 심하다. 쌍욕을 박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쌍욕을 현지에서 내가 대신 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 드는 건, 내가 제조사 FAE라는 점이다. 다이렉트로 영업하는 고객사도 있지만, 대부분의 고객사는 대리점을 거쳐서 일한다. 욕도 한번 거쳐서 먹는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난 항상 대리점 직원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일이 힘들면 그래도 참겠다. 근데, 티키타카가 되지 않아 일 자체가 흘러가지 않는 건 못 참겠다. 선배 직원들이 나에게 '포기하면 편해.'라고 한다. 나도 어느 정도는 손을 놨다. 근데 완전히 포기가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업무 마인드를 어떻게 가져 가야 할 지 고민이 된다. 좋게 좋게 갈지.. 아니면 들이 박으면서 업무를 해야 할지.. 전자를 택하면, 일면식도 없는 해외 공장 사람들에게는 착한 이미지가 남을 것이다. 대신에 나는 많은 업무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후자를 택한다면, 공장 사람들은 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매번 미안하지 않아도 미안하다 하고, 고맙지 않아도 고맙다고 해야 하는 스트레스는 좀 줄어들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들이 박으며 일한다 한들 해외에서 대응을 빨리 빨리 해줄까?싶다. 그렇게 되면 후자를 선택하는 이점이 없다. 전자를 택하면, 해외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좋은 이미지라도 남는다.
글을 적으면서 다시금 확고해진 생각은 그래도 좋게 좋게 일을 해 나가는 게 맞다는 것이다. 동양도 서양도 다 사람 사는 사회다. '바쁜 일이 있어 늦는가 보다.', '혹시, 내 메일을 놓친 걸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리마인드 메일을 보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해야겠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와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문장을 항상 생각하며 일을 해야겠다.